2016년 9월 8일 목요일

(작품)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 - 2016 광주비엔날레

태양의 공장 - 히토 슈타이얼

Factory of the Sun - Hito Steyerl


태양의 공장, 히토 슈타이얼 作

태양의 공장, 히토 슈타이얼 作 (출처: 광주비엔날레)

태양의 공장, 히토 슈타이얼 作 (출처: 광주비엔날레)

봇 선언

모든 광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어떤 광자도 다른 광자보다 더 빨라질 수 없다!
모든 캡쳐를 거부한다!
논플레이어 캐릭터가 돼라!
햇빛은 모두의 것이다!

좀비 마르크스주의
좀비 형식주의를
모든 정치는 대리 정치이다!
매혹! 황홀! 빛!

(작품 '태양의 공장' 중에서)


작가 히토 슈타이얼은 일본계 독일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비주얼아티스트로 베를린예술대 미디어아트 교수이다. 그는 디지털 매체 시대의 이미지의 존재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이 작품 '태양의 공장'은 '디지털 시대의 정보의 흐름과 이미지 왜곡'을 다뤘다고 한다.

관객들은 3D 매트릭스처럼 어둠 속 선으로 나뉘어진 상영관 안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일광욕 의자에 앉아서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비디오를 보면 된다. 상영되는 비디오는 일종의 가상 3D 비디오 게임과 다큐멘터리 뉴스 사이의 그 무엇인데, '넌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할 것이다, 게임이 널 플레이 할 것이다'라는 말이나, 강제노역자 4개의 기계가 탈출했는데 도이치뱅크의 드론이 그들을 사살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도이치뱅크는 나머지 다수를 조종하고 다수를 강제노역시키며 탈출한 대상을 사살하는 그런 존재이고, '태양'은 도이치뱅크와 같지는 않고 생명의 창시자이자 현대의 자본을 뜻한다.

그리고 화면에서 탈출한 봇 중 한 명이 드론에 사살되는 장소는 2차대전 독일 히틀러 때 사용된 건물(폐허)가 전후 미국의 감청시설로 이용됐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자세히 보면 도이치뱅크 뉴스 나올 때 나오는 건물 모습이 그 폐허 모습과 같다. ㅎㅎ

거의 마지막에 '우리는 미래에 살해당했다. 게임과 앱들 때문이다. 우리는 플레이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논플레이어이다'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작가는 '가상세계'에서 어떤 정보나 이미지가 왜곡됐을 때 우리는 이에 저항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화두를 남기는 작품인 것 같았다.

참고로 영상에 등장하는 '교활한'(?) 도이치방크는 자본을 대표하는 독일의 투자회사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도이치방크는 '2011년 11월 11일 주식선물(풋옵션)과 주가폭락 및 조작을 통한 시세차익 먹튀' 논란으로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회사이다보니...

간간이 나오는 화면에 추억의 게임 '울펜슈타인 3D' 게임 이야기도 잠깐 나온다.

참, 상영시간은 23분이다.


* 읽기자료1

태양의 공장, 히토 슈타이얼 作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은 몰입형 비디오 설치물로, 라이트 빔으로 전환되는 노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모션 캡쳐 스튜디오에 설정된 가상의 비디오 게임에 투입되는 작품이다. 소설에서 다큐멘터리로 내러티브 레벨 간에 전환을 하면서 플레이어의 노동 조건과 그들의 행동이 삽입되는 지상주의자 매트릭스를 향한 외부 음성의 내레이션에 의해 게임의 흐름이 이루어진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치열하게 비판적인 슈타이얼의 작품은 예술가, 수필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오늘날의 이미지의 상태에 강력한 기반을 둔 깊은 사색을 전해주고 있다. 그녀 일생의 작품은 물질성에서 유통 회로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출처: 광주비엔날레, https://www.gwangjubiennale.org/www/view/biennale/work.asp?pageNo=17&searchKeyword=&searchText=&code= )


* 읽기자료2

At the German Pavilion, Olaf Nicolai, Hito Steyerl, Tobias Zielony, and duo Jasmina Metwaly & Philip Rizk have created Fabrik, a four-part “factory” purported to be an examination of how the circulation of images has an effect on reality and political representation. Hito Steyerl’s work, The Factory of the Sun (2015) is, for example, a video projected in what is dubbed the “Motion Capture Studio”—a theater room mapped with an immersive 3D matrix where viewers can watch the video while lounging on plastic sun loungers. Narrated by a soft-spoken female voice, it consists of a game that progresses by virtue of light impulses overlaying disco tunes, staged cable-news segments, and the movements made by virtual protagonists clad in gold lamé, motion-capture-device-adorned unitards. Steyerl conveys this heliocentricity, the vitalistic relationship with light, as somewhat of a bright-eyed metaphor for progress, but only insofar as it becomes a way to discuss our complicity with the sun (as a progenitor of life, and thereby capital). By entering the virtual, she negotiates the potentials of our digital present—as part accelerated advertisement, part escapism—in order to reassess the current relationship between pictorial and political representation.

(출처: 2015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FyqqiELBDZM )


* 읽기자료3

(출처: LA현대미술관, http://sfaq.us/2016/06/hito-steyerl-factory-of-the-sun/ )


* 읽기자료4

[책 리뷰]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슈타이얼이 지적하는 현대미술의 민낯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상작가이자 저술가 히토 슈타이얼은 독자가 생각지 못한 지점을 건드리는 것에서 글을 시작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한다는 단어 ‘낙하’는 바닥과 결부돼야 할 논리적 이유가 없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사고해 왔고 그래서 파괴나 파국과 같은 결과를 떠올렸다. 히토 슈타이얼은 말한다. “낙하란 상대적이다. 즉 떨어지면서 가까이 다가올 바닥이 없다면 낙하를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선형원근법은 “자연스럽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이라 단정”되며 마치 “이미지의 평면이 ‘실제’ 세계로 열린 창인 것마냥” 우리의 근대를 형성했다. 화면 속 소실점은 바깥의 관찰자에게 위치를 할당했고, 개별성이나 주체성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양한 시점이 보충된 지금은 선형원근법이 예전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기 어렵다. 히토 슈타이얼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세상의 어디까지가 근본인가 묻는다. 미처 답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시 묻는다. 과연 근본은 있는가, 꼭 필요한가?

신간 ‘스크린의 추방자들(The Wretched of the Screen)’은 숨가쁘게 독자를 추궁하는 히토 슈타이얼의 주요 글 13편을 묶은 책이다. 2012년 나온 책을 4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ㆍ출간하며 2015년 발표한 두 편의 글도 추가로 실었다. 글은 20페이지 내외로 길지 않다.
대표작인 ‘가난한 이미지를 변호하며’도 실려 있다. 그는 ‘가난한 이미지’를 고화질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허접스러운 불법 복제물”, “원본의 비합법적 5세대 사생아”, “현대의 스크린에서 추방된 존재” 등으로 수사하며 거의 분노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다 이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역설에 주목한다. 가난한 이미지들은 공식적인 스크린에서 추방됐기에, 다수에, 그것도 아주 빠르고 강렬하게 닿을 수 있다. 원본과 가짜, 저항과 전유, 보호와 착취와 같은 고민이 떠돈다.

저자는 “열성껏 무급 노동하는 인턴들을 직원으로 둔, 문화 산업의 공식 대리점”으로 미술관을 논하고, 현대미술이 ‘답’이라면 그에 대한 질문은 “자본주의는 어떻게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을까?”였을 거라 꼬집으며 현대미술의 작동방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파격적인 상상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엔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고 현실을 전복한다.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이 산산조각 날지언정 슬프거나 늘어짐은 없다. 오히려 정면 돌파나 대안 모색을 촉구하며 강하게 전개된다. 작품, 글, 강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동시대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는 그의 힘은 여기에 있다.

(출처: 슈타이얼이 지적하는 현대미술의 민낯,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v/c5f191ae143e47e2addcccde77b49259 )


* 읽기자료5

(전략)

이번에 선보인 영상작품 ‘태양의 공장’은 가상현실 속에 머무는 듯한 체험을 통해 감각적 인식의 정확도에 대해 의식하게 만든다. 저술을 통해 꾸준히 제기해 온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놓인 주제다.

“카메라가 재현의 도구라는 믿음은 오해다. 현재 그것은 소멸의 도구다. 어떤 사람이 카메라로 빈번히 재현될수록 현실세계에서 그의 자취는 줄어든다. 방목돼 부유하는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늘어날수록 그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퇴장당하고 실종되기 쉽다.”

스마트폰 셀피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독자의 행동을 떠올려 보자.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본인 이미지를 쉼 없이 네트워크에 흩뿌린다. 지구상을 부유하며 타인의 ‘관심’을 얻고자 애쓰는 이런 이미지를 저자는 ‘이미지스팸’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에 대해 이어진 사유는 부정적이지 않다. 해석의 방향성을 강요하지 않은 담백한 분석이 시종 빼곡하다.

(출처: "카메라는 소멸의 도구…찍을수록 우리는 사라진다",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Section/Books/3/all/20160903/801112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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