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5일 월요일

광주읍성과 광주폴리(folly)

광주읍성의 흔적


* 출처 : 광주의 읍성 : http://panzercho.egloos.com/10716394

'팬저의 국방여행' 블로거께서 아주 정리를 잘 해 놓으셨다. 이글루스에 로그인한 사람만 글을 달 수 있어서 익명으로 글을 남기지 못했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옛 읍성의 흔적들을 살펴보고 있으면, 오래 전 교과서에서 '일제 점령기에 일제가 의도적으로 조선의 성곽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도로를 놓았는데 그 것을 신작로(새로 놓은 도로)라고 불렀다.'라고 배웠었는데... 정확하다. 당시 광주읍이 급속하게 확장됐을 것 같지는 않으니.. 아마도 아마도 '근대화'가 자신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구체제(조선)의 흔적을 지워버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1. 광주의 읍성

1) 고을의 관아였던 동헌은 옛 전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정) 자리였다.

2) 남문 자리는 지금은 목포(주소만 무안)로 이전해버린, 옛 도청자리 뒷길이다. 엄밀하게는 옛 도청 안쪽이고 지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무려 '9년째 공사중'인 장소이지만, 옆 도로 버스정류장 근처에 폴리 '광주사랑방'이 설치되어 있다.

3) 서문 자리는 지금의 황금주차빌딩 뒷편 '미니스톱 황금점' 앞.
이 자리에 폴리(folly) '기억의 현재화'가 있다.

4) 서문 안에 있던 객사(광산관)는, 지금의 무등극장(문 닫음)에서 황금주차빌딩(옛 미국문화원 자리) 일대였다고 한다.

5) 북문 자리는 지금의 충파(충장파출소) 앞: 지금은 커다란 흰색 철 구조물 폴리 '99칸'을 볼 수 있다.

6) 동문 자리는 지금의 전남여고 후문 부근이다. 폴리 '서원문 제등'이 설치되어 있다.

7) 서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성벽의 코너 부근에 광주세무서가 있는데, 그 앞에 폴리 '열린장벽'이 설치되어 있다.

8) 북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성벽의 코너에 광주중앙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앞에 폴리 '광주사람들'이 설치되어 있다.

9) 동문에서 남문으로 가는 코너에는 폴리 '소통의 오두막'과 '잠망경과 정자'가 설치되어 있다.

10) 남문에서 서문으로 가는 성벽의 코너부분에 '구시청 사거리'가 있다.
엄밀하게는 구-구-시청이 되지만.. 사람들은 그냥 '구시청 사거리' 이라고 부른다.
이 자리에 노란 포장마차 모양의 폴리 '열린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 광주읍성 : 과거와 현재의 공존
광주읍성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있다.
100여년 전의 광주읍성 안을 관통하던 주요 도로는 아직까지도 구도심 '충장로'의 주요도로로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동문-서문을 관통하는 길과 남문-북문을 관통하는 길이 만나는 곳은 지금의 '광주우체국' 앞길인데 이곳은 지금도 구도심에서 집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열린다. 남문-북문을 잇던 길은 지금은 충장파출소에서 광주우체국 사이길로 '충장로'의 대표적인 장소이다. 서문 부근은 오래전에는 유흥, 윤락, 향락가였다는데 지금은 옷가게, 레스토랑, 카페가 많고, 동문 부근은 오래전부터 경찰행정, 공무원시험 학원이 많았고 실제 이곳에 동부경찰서가 있다.

도로나 철길이나 사람이 살아갔던 모습의 흔적은 남아있게 마련이다.



2. 광주 폴리(Folly)

* 광주폴리 : http://www.gwangjufolly.org

'폴리(Folly)'의 건축학적 의미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
유럽의 대저택 정원에,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 장식적 건축물을 뜻한다고 하는데...

'광주폴리'가 공공공간 속에서 장식적인 역할과 함께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는데.. 삭막한 아스팔트 잔디 빌딩 숲 군데군데 폴리를 설치해 놓은건 참 괜찮은 생각 같았지만.. 솔직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난해한 건축물을, 재료 역시 '철골 아니면 콘크리트'인 경우가 대다수라서... 행정중심주의의 문제점은 아무리 뭔가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쉽게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 아닐까..


광주읍성 흔적을 나타내는 광주폴리(folly)들..

'열린장벽'부터 시계방향(오른쪽)으로-

열린장벽 = 과거 읍성의 일부였으나 현재 어딘가 묻혀있을 읍성의 돌을 암시, 과거 내 외부를 엄격하게 구분하던 성벽에서 벗어나 삶이 투영되고 현재에 존재하는 열린 장벽으로 복원.
지금의 광주세무서 앞, 본래 위치는 황금로 입구(약 3~40m 왼쪽)
처음에는 황금로 입구(뚜레주르와 투썸플레이스 사이길)에 설치했었는데,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는 상인들의 민원으로 지금처럼 광주세무서 앞으로 옮겼다고 한다. 본래 황금로 입구에 옛 성벽을 모티브로 설치했었다니 비로소 '열린장벽'의 의미가 이해가 간다.

폴리 '열린 장벽' (광주세무서 앞)

99칸 = 99칸은 한옥의 공간과 조선시대의 사회위계질서를 의미.
옛 광주읍성 북문 자리, 지금의 충장파출소 앞.
99칸이 조선시대의 위계질서를 의미하고, 그것을 건축적 요소로 재해석 했다는 것이... 미국의 건축 거장이 구상하고 설계했다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게 광주와 무슨 상관인지, 옛 읍성의 성문과 무슨 상관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성문'을 형상화했다면 될 것을...

유동성 조절 = 금남로사거리와 금남공원 사이의 수직적 수평적 장벽을 해체, 서로 다른 공간을 유기적으로 통합.
옛 한국은행 광주지점 자리. 이곳에 있는 '금남로공원'은 한국은행 광주지점이 옮겨간 자리를 시에서 매입해서 공원으로 단장한 경우인데.. 이곳에 '폴리'를 설치한 경우이다. 지하상가 입구와 지상부가 확 트여있고, 동시에 교차로와 공원을 '폴리'가 차단하는 구조이다. 사거리 쪽에서 바라보면 벽처럼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공원에 설치된 폴리'라는 점에서 적어도 사거리에서 자동차 매연이 직접 날아오지도 않고 공원에 들어선 사람이 공원 밖(사거리 너머)를 구경하거나 신경쓸 일 없이 공원 안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비로소 '조절'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곳 금남로공원과 폴리는 의미와 쓰임 매우 훌륭하다.

폴리 '유동성 조절' (금남로 공원)

금남로공원과 폴리 '유동성 조절'

광주사람들 = 나무가 있는 지면과 하늘 사이의 자연공간을 파고드는 작품. 살아 움직이는 나뭇가지(광주사람들)과 빛(광주)이 공존.
광주중앙초등학교 사거리. 작품은 나무를 구름처럼 감싸는 형태이다.
중앙초등학교는 일제시대(1907)에 세워진 거의 근대 문화재급에 해당되는 적벽돌로 지은 학교인데 현재는 도심공동화가 심각해서 폐교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문화재지정, 폐교 후 현대미술관으로의 전환, 폐교 반대 등 시와 동문들이 논란을 거듭했던 것 같은데 다행(?)인지 당분간은 폐교를 피한 것 같다. 하지만 구도심을 다녀보면 공동화와 슬럼화가 심각하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사라지기 직전)

폴리 '광주사람들' (광주중앙초등학교 앞 교차로)

서원문 제등 = 광주읍성의 동문을 상징하면서 시민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장소.
광주전남여중고 맞은편 횡단보도와 버스정류장 부근.
있는 듯 없는 듯 해서 사실은 이 것이 가장 '폴리'스러운 것 같다.

폴리 '서원문 제등' (전남여고 후문 사거리)

소통의 오두막 = 한옥의 굴뚝 이미지를 모티브로, 나무 윤곽의 패턴을 차용. 나무 사이를 둘러서 넘나드는 유기적 형태의 조형물은 밤에는 조명 역할을 하여 시민들의 오두막이 된다.
전남여고에서 전남대병원 방향, 문화전당 길 맞은편 장동로터리 인도섬에 설치되어 있다.

잠망경과 정자 = 현대화로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광주시민의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잠망경을 제시. 지상 25m에서 내려다보는 탁트인 시야를 제공.
문화전당 맞은편 대성학원 앞. 바로 앞에 커다란 기숙형 재수학원이 있는데, 학생들 탁 트인 시야로나마 답답한 마음을 달래라는 의미인듯..

폴리 '잠망경과 정자' (대성학원 앞)

광주사랑방 =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간의 경계 위에 있는 이 폴리는 구 시가와 새로운 문화전당이 만나는 접점이다. 시민들이 구시가지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을 바라볼 수 있으며 동시에 버스정류장의 기능도 할 수 있는 폴리로써, 시민들의 쉼터이자 전망대의 기능.
~이라는데, 정작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05년 착공 이후 여전히 공사 중이고.. 도청의 목포(주소만 무안) 이전으로 구도심은 극심한 공동화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폴리가 쉼터이자 전망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장인지 전원을 끊었는지 아쉽게도 현재는 작동하지 않는다)


열린 공간 = 구시청사거리는 현재 주요상업지구로 유동인구가 많다. 한국 고전 건축의 나무기둥, 누각, 처마에서 컨셉을 가져왔으며 현대 상업지역과 일상 속 생기를 나타내고자 포장마차 구조를 활용.
'구시청 사거리'에 있다. 사실 이런 모양은 중국이나 일본의 포장마차 형태에 더 가깝고, 우리나라에서는 '오두막'에 가까운 형태이기는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사거리를 토러이 형태로 그리고 가운데 '시장'을 상징하는 포장마차 형태를 배치하여 이곳 지명을 잘 반영하고 있다.

폴리 '열린공간' (구시청 사거리)

기억의 현재화 = 상징적인 대형기념물들이 공식역사를 나타내는 반면, 낮은 요철은 개인의 기억을 위한 작은 기념비를 상징. 광주의 묻혀있던 추억을 회상하고 황금로의 잊혀진 역사를 기억하고 또 다른 현재의 광주를 쌓는 공간을 제공.
옛 광주읍성 서문 자리, 지금의 황금동사거리(미니스톱). 광주폴리 사이트에서 표시를 잘못해뒀다. 사이트에서 표시된 위치는 메가박스 광주충장점이 있는 사거리인데 (어디가 정확한 서문인지는 나로서 확신할 수 없지만) 내 기억에 '이 폴리'가 설치된 곳은 내가 새로 표시한 미니스톱 사거리가 맞다.

폴리 '기억의 현재화' (황금동 미니스톱 앞)

이 폴리는 원래 지금처럼 '로타리' 처럼 설계됐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도가비상도'를 보면, 작가는 이 지역(황금동)이 과거에는 오랫동안 '향락업소'가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의 쇼핑공간'으로 변화하였고, 주변에 작은 골목길이 많아 도심 재생을 위해서는 '작은 쉼터'가 적절하고, 특히 황금동의 옛 광주읍성는 사거리의 첫번째 관문인 서문을 상징하는하는 의미로 하늘로 엇갈리게 치솟은 4개의 기둥구조를 폴리의 기본구조로 구상했다고 한다.

'땅 속에서 하늘로 치솟은 기둥들은 반(反) 기념적 조형물로서 새로운 기억 생성의 터를 상징한다. 기둥의 재질은 청동합금이며 황금색 트리형태가 될 것이다. 기둥엔 와이파이(Wi-Fi)나 배너깃발 등을 설치할 수 있으며 플랫폼 벤치도 들어선다. 30여m 떨어진 골목길 입구에는 작은 폴리가 추가로 건립된다. 골목 폴리는  옛 성벽에 높이가 표시된 눈금들이 있었던 것을 응용하여 골목 안내문 표시가 설치된다. 조형물 위에는 주민들이 화분들을 올려놓을 수도 있다.'

'기억의 현재화' 계획안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그래서 원래는 이렇게 설계됐지만, 도보 전용 거리인 충장로 거리에 실제로는 차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차량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로터리' 형태로 변형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마저도 '로터리'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이 '직진'으로 이 폴리를 넘어가다가 차 바닥이 긁히는 '교통사고'가 종종 생긴다고...

원래 충장로는 1가부터 5가까지 모두 차량통행이 금지된 구역이다. (단, 상품운반목적 2톤 미만 차량만 23시~09시 통행 허가) 그것도 1996년 이후란다.
솔직히 충장로 지나갈 때 마다 사람도 많은데 차 끌고 들어와서 빵빵대는 '인간'들 겪을 때 마다 짜증났는데, 정작 차량통행이 20년 전부터 불법이었었다니..!!!
그렇다고 이걸 해결한다면서 시에서 세금써서 주차장 확보할 필요가 있나?
이미 주변에 호남동 공영주차장도 있고, YMCA 근처에는 비싼 사설 주차장도 있는데...

결국 차 바닥 긁는 운전자들 잘못이지 폴리 설치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뭐 결국 관습이 죄이었을 수는 있겠지만...



3. 헛갈리는 지명

세대가 바뀌고, 지명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다보니... 삼촌이나 아버지 (또는 그 이전 세대) 세대가 청년일 때 통용되던 지명들이 굳어서 아직까지 사용되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은 정말 헛갈리고 궁금한 지명이 가끔 있다.

* 광주에서 '구시청'은 어디?

지금 시청 = 서구 치평동 상무지구에 있다. (2004년~현재)
옛 시청 = 동구 계림동 홈플러스 계림점 자리. (1973년~2004년)
              그런데 이곳의 버스 정류장이 '419기념관' 또는 '구시청'으로 되어 있다. 헐~
옛-옛 시청 = 동구 광산동, 소위 '구시청 사거리'가 여기를 말한다. (1924년~1969년)

시청은 몇 번 옮겼지만 광주 사람들 사이에서의 '구시청 사거리'는 한 곳이다.
전남도청 이전 이후 상권이 많이 죽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금 유흥가'로 유명하다.

분명 구-시청은 사실 '구-구-시청'이어야 하는데도, 광주에서 택시 잡아타고 '구시청 사거리 가주세요'라고 말하면, 기사아저씨가 '충장로'인지 '홈플러스'인지는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아무말 없이 곧장 계림동으로 데려가주지는 않는다.

* 황금동사거리와 런던약국사거리

너무 헛갈려서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봤는데...
황금동사거리 = 황금동 콜박스 사거리 = 지금의 황금동 미니스톱 사거리 이고,
런던약국사거리 = 지금의 메가박스 사거리 이다.
예문 : 미스터피자 충장중앙점은 황금동 콜박스사거리에서 런던약국사거리 방향에 있다.

콜박스 = 공중전화부스 이게 아니고, 여기부터 광주천까지 이 일대가 일제시대부터 거의 100여년 동안 주점거리, 유흥가, 윤락가였다고 한다.
런던약국은 실제로는 황금로 입구쪽에 있다. 투썸플레이스 골목 입구쪽에 작은 약국이다.

토박이도 헛갈리는 지명, 신기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